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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중세시대 로마제국의 언어, 그 다양성의 향연

by CACACA 2024. 7. 25.

중세 로마제국, 즉 비잔티움 제국은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언어적 다양성이 존재했던 곳이에요. 공용어였던 그리스어부터 라틴어, 콥트어, 시리아어 등 여러 언어가 공존하며 제국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죠. 각 언어는 지역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발전해 갔고, 문학과 학문, 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이제부터 비잔티움 제국의 언어 지도를 펼쳐 보며 그 매력에 빠져볼까요?

제국의 공용어, 그리스어

아티카 방언의 계승

비잔티움 제국의 공용어는 단연 그리스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되던 아티카 방언을 계승한 형태였죠. 비잔티움 그리스어라고도 불리는 이 언어는 고대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어요. 문법과 어휘에서 고대의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좀 더 단순해지고 구어체에 가까워진 변화를 겪었거든요.

문학과 학문의 언어

그리스어는 비잔티움 제국의 문학과 학문을 꽃피운 토양이었어요. 호메로스의 서사시부터 플라톤의 대화편까지, 고전 문학의 전통은 그리스어로 이어졌죠. 성 바실리우스나 성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교부들의 신학 저술도 그리스어로 쓰였고요. 역사가 프로코피우스, 시인 로마노스 멜로도스 등 비잔티움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언어이기도 했답니다.

민중의 언어로서의 변화

그리스어는 제국의 공용어이자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보였지만, 점차 민중의 언어로도 스며들어 갔어요. 교회에서는 그리스어로 예배를 드렸고, 서민들도 일상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고전적인 문법과 어휘는 약화되고, 구어체적인 요소가 강해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후에 현대 그리스어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법과 행정의 언어, 라틴어

로마 제국의 유산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 제국의 동쪽 영토를 계승한 국가였기에, 라틴어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어요. 특히 초기에는 법률이나 행정 문서에서 라틴어가 주로 사용되었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집대성한 유명한 법전도 라틴어로 쓰였답니다. 이는 로마의 법체계가 비잔티움 제국에도 그대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스어에 밀려나다

하지만 6세기 무렵부터 라틴어는 점차 그리스어에 밀려나기 시작했어요.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그리스어 사용 지역이 확대되면서, 라틴어는 변방으로 밀려났죠. 법률과 행정에서도 그리스어가 우세해졌고, 라틴어로 쓰인 문헌은 그리스어로 번역되기 일쑤였답니다. 9세기 무렵에는 라틴어가 제국 내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해요.

이집트의 언어, 콥트어

고대 이집트어의 후예

콥트어는 기독교화 이후 이집트에서 사용된 언어예요. 고대 이집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리스 문자를 사용했죠. 기원후 1세기부터 등장해 약 1000년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콥트어 성경이나 수도사들의 글 같은 종교 문헌이 다수 남아 있는데, 이는 콥트 교회의 전통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아랍어에 밀려나다

이집트가 아랍 제국에 정복된 이후로는 콥트어가 아랍어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어요. 하지만 콥트 교회에서는 여전히 예전의 언어로 콥트어를 사용했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죠. 현재 콥트어는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죽은 언어로 분류되지만, 콥트 정교회의 신학교에서는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고 해요. 고대와 중세를 잇는 언어적 유산으로서 그 의미가 깊습니다.

시리아의 언어, 시리아어

아람어의 방언

시리아어는 아람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로, 오늘날 시리아와 레바논 등지에서 사용돼 왔어요. 기원전 1세기부터 문헌상으로 확인되는데, 기독교 선교와 함께 중동 지역에 널리 퍼졌죠. 특히 시리아 정교회에서 전례 언어로 사용되면서 종교적 중요성도 갖게 되었답니다. 『페시타』라는 시리아어 성경은 기독교 성경 번역사에서 큰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요.

문학의 꽃을 피우다

시리아어는 종교 영역을 넘어 문학에서도 큰 역할을 했어요. 4세기의 시인 에프렘은 시리아어로 찬가와 설교시를 남겼는데, 그의 작품은 시리아 문학의 전형으로 꼽힙니다. 역사가 요한 폰 에페소스도 시리아어로 『교회사』를 집필했죠. 그 외에도 철학, 과학, 문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리아어 저술이 이뤄졌답니다. 아랍어에 밀려 쇠퇴하기 전까지 시리아어는 중동 지역의 지적 교류를 꽃피운 셈이에요.

다양한 소수 언어들

아르메니아어

비잔티움 제국 동부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르메니아어가 사용되었어요. 기원후 405년, 아르메니아의 성 메스롭이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면서 문자 언어로 발전했죠. 성경 번역을 비롯해 초기 기독교 문헌들이 아르메니아어로 쓰였고, 중세 동안에는 다양한 분야의 저술이 이뤄졌답니다. 아르메니아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언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루지야어

그루지야에서는 그루지야어가 쓰였어요. 기원후 430년경에 그루지야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문자 언어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특히 중세에는 페르시아와 아랍의 문학적 영향을 받아 『훔번트 낭자』 같은 서사시와 시가 창작되기도 했답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 아래 기독교 국가였던 그루지야의 언어생활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어요.

슬라브어

6세기 이후 발칸반도에는 슬라브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슬라브어를 사용했어요. 9세기에는 선교사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가 슬라브 문자인 글라골 문자를 만들어 슬라브어 문헌을 남기기도 했죠. 이는 후에 키릴 문자로 발전해 오늘날까지 많은 슬라브 언어에서 사용되고 있답니다.

결론

지금까지 비잔티움 제국에서 사용된 다양한 언어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광활한 제국의 영토만큼이나 언어의 스펙트럼도 넓고 다채로웠던 셈이죠. 그리스어라는 공용어를 중심으로, 라틴어, 콥트어, 시리아어 등 여러 언어가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을 꽃피웠습니다.

이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과 세계관을 담지한 문화 그 자체였어요. 종교의 언어이자 학문과 예술의 토대였고, 민중의 담화이기도 했죠.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비잔티움 제국은 언어의 다양성 속에서 문화적 역동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이 화려한 언어의 궁전도 영원할 순 없었죠. 아랍과 투르크 등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언어 지도를 크게 뒤바꿔 놓았고, 많은 언어가 사라지거나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비잔티움에서 꽃피운 언어들의 유산은 각국의 민족어, 종교 언어 등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어요.

그 유산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언어를 대하는 태도, 언어의 다양성을 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죠. 비잔티움의 언어들은 우리에게 천년의 메아리로 울려오며, 더 나은 언어관, 문화관을 품으라 속삭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